한국의 산업화를 이끈 주역 : 광부
‘에라, 까짓 안 되면 탄광에나 가지!’
생활고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자주 내뱉던 말에서 확인하듯, 탄광촌은 마지막 직업을 선택하면서 들어온 사람들이 살던 곳이다. 막장이라는 작업현장도 그렇거니와 삶의 배수진을 친, 막장인생이라 부르던 사람들이 모여 사회를 이룬 공간이 탄광촌이다. 경제적 소외층이 고향을 등지고 들어온 탓에 3년만, 5년만 일을 해서 돈을 벌어 떠나겠다고 들어왔던 사람들이 뿌리를 내리면서 탄광촌 고유의 문화를 만들었다.
여자가 남자의 앞길을 가로질러 걷지 못하고, 출근한 남편의 신발을 방안을 향해 돌려놓는 독특한 생활문화들은 탄광촌의 특수한 공동체 사회를 보여주는 속신이기도 하다. 산업화 발달 과정에서 다른 도시에서는 과거 금기가 사라지는 추세 속에서도 탄광촌은 새로운 금기와 금기행위가 만들어지고 공고해졌다. 이는 바깥 사회와 단절된 지리적 폐쇄성과 석탄산업이라는 단일 업종으로 이뤄진 사회공동체의 영향이기도 하다. 사북항쟁을 비롯한 대규모 탄광노동운동 현장이나, 폐광지역 생존권 찾기 궐기대회 때 주부들을 포함한 주민 전체가 나서서 강한 결속력을 보인 것도 지역공동체가 존재했기에 가능했다.
탄광촌은 농촌·어촌과 더불어 대표적인 산업공동체 사회를 상징한다. 남북한을 통틀어 탄광촌 역사는 100년 내외인데, 머잖아 산업시대를 대표하던 탄광촌은 모두 소멸하고 말 것이다. 강원도는 한국 탄광촌의 상징적인 공간이자 3개의 광업소가 여전히 운영되는 지역인 만큼, 탄광 문화를 지역의 소중한 문화자산으로 가꾸어 나갈 필요가 있다.
한국 석탄 전체 매장량의 75%가 강원도에 있던 것처럼, 우리나라 탄광촌 역시 강원도에 집중되어 있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탄광촌으로는 강원도의 삼척시·태백시·정선군·영월군을 비롯하여 경북의 문경시, 충남의 보령시, 전남의 화순군 등 7개 지역을 꼽고 있다. 7개 지역 중 4개가 강원도에 밀집돼 있으니, 한국 석탄산업은 강원도가 이끌어온 셈이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하였다. 1부는 광부의 삶을, 2부는 탄광촌의 생활상을, 3부는 덜 알려진 탄광촌 이야기를, 4부는 탄광촌의 역사와 생존권 투쟁 등을 다룬다.
이 글은 특히 탄광촌의 핵심 구성원인 광부를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다. 요즈음 ‘막장’이라는 용어가 다른 뜻으로 활용되는 것이 안타까운데, 탄광촌의 막장에는 숭고한 의미가 담겨 있다. 산업에너지원인 석탄을 캐는 작업장이자,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채굴하는 위험한 현장이 막장이다. 1년에 200명씩 광부가 목숨을 잃는 탄광막장이었다. 갱내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같은 막장에서 일하던 광부들이 동시에 생명을 잃기 때문에 ‘한 막장은 한 제삿날’이라고 불렀다. 국가를 위해 산업전선에서 싸우다 죽어간다는 의미에서 광부들을 산업전사라고 불렀다. 탄광촌의 산업전사위령탑과, 6개나 되는 진폐재해단체들은 산업화 과정을 온몸으로 받아낸 증거이기도 하다.
이마에 등불 하나 달고, 아무리 파내 보더라도 여전히 막장인 곳에서 광부는 석탄을 채굴했다. 1935년 영월광업소, 1936년 도계광업소 개광부터 오늘날까지 80여 년간 광부들이 캐낸 석탄은 강원도의 주요 산업이자, 한국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도계·영월·장성광업소의 광부들은 1950년 6·25 한국전쟁 와중에도 석탄을 캤다. 1951년엔 45,848t을 1952년에는 355,106t을 생산할 정도였다. 1950년 11월, 전쟁 중에도 대한석탄공사를 설립해야 할 정도로 석탄생산은 국가적 과제였다.
이렇게 캐낸 석탄은 한국 산업화 과정에서 핵심 에너지원을 제공했으며, 난방 연료인 연탄을 제공하면서 서민들의 안방까지 훈훈하게 만들었다. 한강의 기적으로 상징되는 경제발전은 강원도의 석탄 없이는 불가능했다. 1966년 연탄파동 때는 장관의 목을 걸고 연탄을 공급하라는 대통령의 지시까지 있을 정도로 석탄생산은 국가의 중대사였다. 1973년과 1977년의 두 차례 세계적 석유파동을 극복할 수 있는 동력도 바로 석탄이었다.
농촌이나 산업도시 주변에서 탄광을 찾아 몰려온 광부들이 만든 탄광촌의 형성 과정도 그렇거니와, 석탄에서 석유로 에너지가 바뀌면서 빚은 탄광촌의 몰락은 한국 산업사의 흐름을 보여주는 축약판이기도 하다. 삼척·태백·정선·영월 탄광촌은 한국 산업사의 가장 중요한 현장이자, 막장정신을 지닌 광부들이 일군 기층민중의 독특한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석탄과 광부, 그리고 탄광촌이 빚은 유형·무형의 자산은 우리 강원도가 지닌 자랑스러운 산업문화유산이다. 우리가 농촌과 어촌의 가치를 새겨왔듯, 이 글을 통해 탄광촌의 고유문화와 정체성을 이해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